국가 대표 대사관, 위치·규모가 그 나라 국력의 척도

조회수 2017. 8. 7. 12: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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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 약 170여 개국 대사관 개설 치열한 외교전 펼쳐

강대국은 워싱턴 중심가 큰 독립건물에 외교관 수도 많아

주미한국대사관, 한미동맹 최일선 근무해 자긍심 높아

워싱턴의 매사추세츠 애비뉴에 있는 주미대한민국대사관. 필자 제공

필자는 워싱턴에 근무하며 여러 나라 대사관에서 열리는 국경일 행사나 국군의 날 리셉션 및 국가별 소개 같은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곳 역시 군사외교의 장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할 수 있으며 그 나라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초청을 받으면 가능한 한 꼭 참석했다. 어느 날에는 하루에 몇 개국 행사가 겹치는 때도 있었는데 잠시 들러 인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대사관의 위치와 규모가 국력의 척도임을 깨닫게 됐다. 대사관은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와 외교관들이 공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며 주재국의 수도에 위치한다. 국제외교의 중심지인 워싱턴에는 약 170여 개국이 대사관을 개설해 치열한 외교를 펼치고 있다.


강대국들은 워싱턴 요지에 큰 규모의 독립건물을 대사관으로 갖고 있고 외교관 수도 많다. 약소국들은 대사관 규모도 적고 다른 건물에 세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규모뿐 아니라 건물 내부에 들어가 보면 방문인사 영접 자세로부터 나라 소개 문구나 사진·동영상도 차이가 났다. 국경일 행사나 국군의 날 행사에 가 봐도 행사 수준이나 내용 역시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는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외교관이 국가의 얼굴이듯 대사관도 그 나라를 가장 잘 나타내는 국가의 상징이다. 특히 워싱턴처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교관들이 나와 있는 국제도시에서는 더욱 그랬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캐나다·호주·중국·러시아 등은 대체로 좋은 위치와 넓은 부지에 복지시설과 정원까지 갖추고 규모가 큰 독립건물을 대사관으로 갖고 있고 근무 인원도 많다.

2013년 11월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안호영 현 주미대사와 함께한 필자. 뒤에 역대 주미대사들의 사진이 보인다. 필자 제공

우리나라와 미국은 1882년에 수교를 맺어 19세기 말 공사를 교환했다. 미국은 1883년 푸트(Foote) 공사를 서울에 보냈고, 조선도 1888년 박정양을 워싱턴에 초대 주미공사로 보냈다. 1891년 고종은 워싱턴의 백악관 북동쪽으로 약 1km 되는 로건서클에 당시로서는 거금인 2만5000달러를 주고 공사관 건물을 매입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 국권을 강탈하고 주미공사관 건물도 강제로 빼앗아 미국인에게 매도했다.


필자가 국방무관으로 근무하던 2012년 우리 정부는 구한말 공사관 건물을 350만 달러에 다시 매입했다. 필자도 그 건물을 자세히 둘러봤는데 건물 자체도 잘 보존돼 있었고, 구한말 사진을 보니 그때 우리 국력에 비하면 괜찮은 건물이며 공사관의 격도 갖추고 있었다.


워싱턴 근무 시절 종종 그 건물 옆을 지날 때마다 국가와 국권과 국력을 생각하게 하는 역사의 단면을 느꼈다. 우리 정부는 이 건물을 복원해 대한제국 공사관의 역사와 대한민국 발전상을 알리는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는데, 올해 초 다시 가보니 이를 위한 내부공사가 한창이었다.


매사추세츠 애비뉴는 워싱턴의 기차역인 유니언스테이션으로부터 북서쪽으로 길게 뻗은 대로이다. 현지인들은 이 길을 짧게 ‘매스애비뉴’라고 부르는데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와 함께 미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워싱턴 시내의 대로이다. 우리로 말하면 종로나 을지로 정도 되는 길이다.


백악관 바로 뒤 스콧서클로부터 매스애비뉴를 따라서 부통령 관저가 있는 해군천문대까지에 외국대사관이 많이 밀집돼 있다고 해서 대사관로(Embassy Row)라고 칭한다. 우리 대사관도 여기에 있다.

워싱턴의 매사추세츠 애비뉴에 있는 주미대한민국대사관. 필자 제공

대한민국 정부수립 한 해 뒤인 1949년 정부는 매스애비뉴의 쉐리던서클에 주미대사관 청사를 구입해 업무를 봐 오다가, 국력 신장과 함께 더욱 큰 건물을 구매해 1992년 지금의 청사로 이사했다. 구 대사관 건물은 지금 워싱턴 총영사관으로 쓰고 있다.


현재 우리 대사관 바로 옆에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터키대사관이 있고 인근에 영국대사관과 호주대사관이 있다. 현 대사관 건물은 구건물에 비하면 훨씬 크다. 그러나 이전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국력이 더 커지고 한미 관계 업무 소요도 많아졌기에 그에 걸맞은 더욱 큰 건물을 갖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얘기를 대사 및 공사들과 나눠보기도 했다.


워싱턴의 주요국 대사관 앞에는 그 나라를 상징하는 지도자들의 동상이 서 있다. 영국대사관 앞에는 미국과 연합해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수상의 동상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서 있고, 인도대사관 앞에는 독립운동가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 동상이, 터키대사관 앞에는 국부로 불리는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 동상이 서 있는 식이다.


우리 대사관 앞에도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으로서 한미동맹 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승만 대통령 같은 인물의 동상을 세운다면 나라를 알리고 한미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며 200만 재미 교포들도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미대사관에는 대사를 비롯해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정무공사와 통상문제를 다루는 경제공사, 국방과 안보협력 및 군사외교를 담당하는 국방무관, 이에 대한 실무를 담당하는 외교관과 무관들, 그리고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주재관들이 있다. 이들은 한미관계의 최일선에서 국가이익과 국위선양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근무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전역에 9개 총영사관을 운용하며 교민들에 대한 영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사 주관으로 매주 회의를 하는데 외교부, 국방부, 기재부, 교육부, 통일부, 법무부, 행안부, 산자부, 국토부 등 여러 부처 대표들이 업무보고를 한다. 주미대사관은 한미 관계와 업무의 중요성으로 인해 정부 각 부처에서 많은 주재관들이 나와 있어 실로 ‘작은 정부’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중요하고 할 일도 많다. 이들은 미국에서 국제관계와 한미 관계를 경험하고 귀국해 각 부처에서 중요한 일들을 수행한다.


필자가 국방무관 시절에는 국무총리를 역임한 한덕수 대사, 외교부 차관을 지낸 최영진 대사, 안호영 대사가 근무했고 한미동맹, 북 핵 문제,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 한미 FTA 체결 등 외교 안보 및 경제 분야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현안들을 다루었다. 모두 풍부한 외교·행정 경험과 관록을 가진 분들이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한미동맹 강화에 힘쓰고 국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고 필자도 국방과 한미안보협력 면에서 잘 보필하려고 노력했다.


역대 주미대사로는 초대 장면 박사로부터 정일권, 김정열, 김동조, 함병춘, 김용식, 류병현, 한승수, 이홍구, 한승주, 한덕수, 최영진 대사 등 총리와 장관을 역임한 인사나 직업외교관, 군 장성 등이 임무를 수행했다.


이들은 6·25전쟁 시 나라의 존망을 가늠하기 힘든 시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외교의 최전선에서 주미대사관의 전 요원들과 함께 국가이익과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힘써왔다.


현재 우리의 국력과 위상은 구한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국가를 상징하는 대사관의 위상과 역할도 국력의 크기와 국가의 흥망성쇠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봐왔으며 필자도 워싱턴에서 이를 직접 목도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태극마크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다.

<전 주미국방무관 이서영 장군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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