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

조회수 2017. 7. 22. 2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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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모두의 말, 행동, 생각이 자유로워야 한다.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 경우가 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대거리를 하거나 호탕하게 할 말 다해버려서 바로바로 풀고 넘어가고 싶다. 하지만 성격에 따라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 그리곤 집에 돌아가서 온종일 혹은 몇 날 며칠을 곱씹으며 억울해하고 분해한다.



네가 그렇게 말할 자유를 허한다, 물론 나의 자유도


물론 여러 솔루션이 존재한다. 어떤 방법이든 핵심은 꾸준한 훈련과 시도일 것이다. 초기에 잘 안 먹힌다고 포기하거나 멈추지만 않으면 효과를 볼 방법들이 많다. 한 방에 끝나는 방법은 없다. 허나 아예 이런 방법조차 모르거나 없는 것과 비교하면 이런 방법론이나 심리적 스킬은 많이 알수록 좋다. 이 글에서는 그중 강력한 한 가지 방법을 같이 볼 것이다.


우선 대전제가 있다. 결코 바보가 되지는 마시라. 부당하게 공격을 받고 있거나 억울한 상황이면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대응해야 하고 표현을 해야 한다. 필요하면 같은 말을 해 주거나 욕을 해 주거나 패 줄 수도 있다. 할 필요가 있거나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시라. 가만히 계시지 마시라.


그리고 그러한 정당한 반응과 별개로, 동시에 이것을 하시라.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상처를 받고 마음에 오래 담아 두는 경우라면 이제부터는 그런 경우 마음속으로 이렇게 선언해버리시라.

너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당연히 너의 자유다. 그러니 너의 자유를 허락하노라!
평화와 치킨의 마음으로!

아주 당당하게, 마치 내가 그 관계와 상황의 주인인 것처럼(실제 주인이기도 하다) 실제 그 자유를 허락해 주는 것이다. 자기 자유인데 내가 어찌할 것인가. 마치 나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도 나의 자유인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군가 나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듯 나도 상대에게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항상 그대로 놓아두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 주의한다. 여기서는 우선 내 마음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를 말한다. 내 행동은 그와 별도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취할 수 있음을 항상 유념하자.


보통 이런 경우 겉으로 당하면서 속으로는 ‘우씨, 정말 기분 나쁘네. 네가 그러면 안 되지. 네가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과 행동을 하면 안 되지, 감히. 안 돼!’라고 계속 생각한다. 겉으로 표현만 안 하고 있다뿐이지 사실 내 마음속에서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전혀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계속 금지하고 있다. 이건 사실은 우리 마음의 소심한 독재다(당사자가 사회적 힘이 있을 때는 실제 독재로 실행되기도 한다. 실제 독재는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불행한 일이다).

속으로만 화내봐야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지혜롭게 바라보면 내적 금지, 내적 불허용은 아무런 효과와 이익이 없다. 그런다고 상대방이 멈추지도 않을뿐더러 변화를 만들어 내지도 못한다. 그냥 내 마음만 더 억울해질 뿐이다. 왜냐면 ‘상대의 생각, 말, 행동의 자유에 대한 나의 금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라는 건 가능하지만 실현은 안 된다. 불가능한 것을 계속하려고 하니 내 마음도 더 괴롭고 또 실제 해결책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걸 눈치채야 한다. 


이게 끝은 아니다. 그럴 순 없다. 상대방만 고려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도 고려해야 한다. 나도 나에게는 공평하게 대해줘야 할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 동시에 챙겨야 할 것, 선언해야 할 것이 다음이다.

나의 모든 생각, 말, 행동도 당연히 나의 자유니 나의 자유를 허락하노라!

‘상대의 자유’만이 아니라 ‘내 자유’도 있으므로 내가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다 하는 것이다. 내 자유를 내가 먼저 허락하라. 타인의 허락이 없어도 말이다. 동시에 맘 속에선 상대의 자유도 허락하라. 상대방의 자유가 허락된 내 마음의 상태에서 이제 나도 내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이 자유의 허락은 어느 측이 먼저랄 것이 없다. 사실은 ‘동시에’ 양측의 자유를 모두 허락하는 것이다. 최상의 효과를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자, 이렇게 양측 모두의 자유를 허락하자! 그러면 나의 마음과 행동방식은 이전과 분명 달라진다. 처음에는 과거의 관성 때문에 큰 차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자유 허락‘에 점점 익숙해질수록 더 열리고, 화통해지고, 호탕해지고, 자유로워지고, 조화로워진다. 양측 모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서로를 받아줄 수 있다. 이런 것을 점점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

너도 말할 수 있고, 나도 말할 수 있다.

얼핏 두 행위가 충돌하는 듯 보일 수도 있다. 내가 반응할 건 자유롭게 반응하라고 하면서 또 상대의 자유를 허락한다는 건 모순 아닌가? 맞다. 초반에는 모순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약간의 심리적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상대의 자유도, 나의 자유도 허락하라고? 그럼 상대 행동을 내가 금지해야 할 때 나는 금지해야 해, 말아야 해?’는 식으로 말이다. 


어떤 경우든 처음에는 당연히 그렇다. 그러나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를 동시에 허락하고 인정하는 내공이 반복과 훈련에 의해 점점 더 강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지 알게 된다. 관계의 ‘질적 변화’가 실감 나기시작할 것이다. 시차는 있지만 결국 온다.



내 마음의 ‘운동장’을 바꾸는 것


좀 더 선명한 이해를 위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상황에서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내가 ‘아니!’ 혹은 ‘하지 마!’를 외치고 싶다. 자, 이제는 그와 별도로 일단 내 마음속에서는 상대방이 그런 표현(말이나 행동)을 할 자유를 허락해 주라. 진심으로. ‘그래, 그건 네 자유야!’라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자유를 또한 허락하라.


이전과 명백한 차이가 있다. 이전에는 ‘아니’ 혹은 ‘하지 마’라는 말은 하고 싶지만 내 자유를 허락하지 못해서 분한 마음을 삭이며 아예 말을 못 했다. 말을 하더라도 속으론 상대방이 그런 표현을 할 자유를 허락지 않았다. 이 차이가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대방에게도 자유를 허락하고 나도 자유롭게 ‘아니!’ ‘하지 마!’라고 말하거나, 역시 자유롭게 말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같은 듯 보이지만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 후자는 훨씬 자유롭고 시원하고 화통하다. 효과도 훨씬 크고 그 후 상황이 풀려나가는 흐름도 다르다.


과거에는 내 마음도 닫힌 데다 심리적으로도 여유가 없어서 매번 상황과 관계를 악화시키는 대응만을 했다면 이제 점점 나와 상대, 주변 상황이 넓게 보인다. 좀 더 여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새로운 해결책도 눈에 보인다. 심지어 농담을 건네거나 장난을 치며 이전엔 힘들었을 상황을 능숙하게 통제할 수도 있다.


보통 우리는 상대 표현의 자유를 마음에서 일절 허락지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안 돼, 하지 마’라고 한다. 혹은 어쩔 수 없이 아무 말도 못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상대 자유를 허락지 않는다. 그러면 ‘하지 마’라고 표현하든 하지 않든 똑같다. 내 마음의 불편도 여전하고 대상과 나 사이에 만들어지는 긴장이나 부정적 감정은 전혀 없어지지 않는다.


혹은 상대방의 행동에 ‘그래, 너의 자유다’라고 어느 정도 허락하면서도 나에게는 ‘지금 이런 분노의 감정을 가지면 안 돼. 참아야 해. 이런 건 느끼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안 돼’라고 한다. 이 또한 “하지 마!”라는 말을 하든 하지 않든 똑같다. 긴장과 부정적 감정은 없어지지 않는다.


양 측의 자유를 모두 허락해 주는 것은 운동장을 아예 바꾸는 것이다. 이전에는 내 마음이 뭔가 기울어져 있고 울퉁불퉁하고 지저분해서 제대로 놀 수 없었던 운동장이었다면, 이제는 평평하고 반듯하고 깨끗한 운동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 위에서 더 자유롭고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다.

처음에는 ‘양쪽의 자유를 모두 허락해 주기’가 낯설고 서툴러서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이런 것도 미리미리 대비하자. 예상치 못했다면 당황스럽지만 미리 알면 와도 그리 크게 힘들지 않다.


초반에는 아직 양쪽 자유를 허락하는 게 능숙하지 못해서 언쟁이 높아질 수도, ‘아,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과거와 별로 다를 것 없는 것도 같다. 점점 익숙해지면 달라진다. 포기하지 않으면 노하우도 늘어나고 능숙해진다.


이것은 내 삶의 행복을 위한 ‘위대한 용기’이기도 하다. 나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연인, 가족, 친구, 지인들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용기. 그러므로 자신을 격려하면서 진행할 수 있다. 용기는 어떤 경우든 멋진 것이기에. 내 의도와 경험이 강해질수록 그 ‘양쪽 자유의 동시 허용’을 점점 더 마음껏 즐기게 된다.


요령 중 하나는 큰 변화를 기다릴 것 없이 내가 실행하면서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내가 하는 ‘만큼’ 성공이다. 1만큼 되면 1만큼 성공이다. 10도 마찬가지다. 굳이 꼭 완전한 100의 성공만이 유의미한 성공인 것은 아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질적 변화들이 단계적으로 더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각 단계는 고유한 즐거움을 준다. ‘양측의 자유를 동시에 허락하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이 한 번에 끝이 아니라 새롭게 확장되어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다가 의식 속에서 무언가 ‘아!’ 하고 느껴지는 이 순간, 우리의 무의식과 잠재의식 속에서는 그 첫 번째 질적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초반에 잘 안 된다고 섣불리 실망하거나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자전거 타기의 과학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데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자전거 타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배우는 단계, 그리고 실제 나가서 타 보는 단계. ‘타인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를 모두 허용하기’의 이론적 설명은 여기까지다. 이제는 나가서 실제 자전거를 타 보자. 중간중간 넘어져도 계속 타 보자. 본래 자전거 타는 방법 배우기란 그런 것이다.


그러노라면 조만간 신나게 달리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누가 아는가? 처음부터 신나게 달리게 될는지도.


원문: 필로 이경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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