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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을 판단하는 나만의 근거

조회수 2017. 4. 24. 17: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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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대체 썸이란 무엇일까?


‘친구 이상 애인 미만’,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등 다양한 수식이 덧붙었던.


그러다 때로는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라는 조금은 서글픈 이름으로도 불리던 그 관계는 21세기가 되고도 10여년쯤 지난 후에야 ‘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 이름이 태어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듯, 사람들은 제각각 ‘썸’이라는 묘한 개념에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다.

글쎄 나도 도저히 모르곘네… ⓒJTBC <마녀사냥>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 썸은 여전히 어려웠고,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그 관계만큼이나 섣불리 판단하기 힘든 것도 없었다.


썸인 것 같았던 누군가는 썸이 아니었고, 이 상황이 무엇인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어느 관계는 돌이켜 생각하면 사실은 썸이었다.


모두가 어렴풋이 알지만 아직 명확하게 정의된 적 없는 그것을 위해,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기준에 따라 썸을 판단하는 근거를 찾아나갔다.


그렇게 썸을 위한 자신만의 근거를 향해 헤메던, 어느 6명의 이야기.


취향불가침의 영역을 깨고


내 세상 속에선,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기본적으로 나는 무척이나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었고, 남들의 취향이야 어차피 내 알 바 아니었다.


나와 다른 이들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요즘은 어떤 노래를 듣는지, 디즈니와 지브리 중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그런 건 딱히 궁금하지도,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다.


내 취향 아닌 취향을 직접 겪어볼 리는 더욱 만무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나는 내 취향만을 고집할 테니까.

이를테면 이렇게 이어폰을 한 짝 씩 나눠 끼는 것처럼.

그렇기에 서로의 이어폰을 통해 노래를 듣고,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어제 읽은 책을 오늘바꿔서 읽는 건 내겐 무척이나 특별한 사건일 수밖에.


누군가와 나누기 시작한 일상엔 어느새 내가 아닌 누군가의 색이 칠해지고, 굳게 닫혀있던 내 취향은 조금씩 변화를 맞이한다. 


내 일상과 취향은 나만의 것이고 거기에 남의 취향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 틈을 만들어 낼 정도의 마음이라면, 그것을 썸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누군가와 ‘좋은 관계’가 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일상이 되는 과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 취향을 나누며 서로의 일상주파수를 맞추는 이 과정이야말로 내게는 그 무엇보다 확실한 썸의 근거다.


by.형기

 

문득 떠오르는 사소한 기억이


어떤 사람들은 늘어나는 물음표 개수로 호감을 판단한다고 하던데, 내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음표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나 심심해서 견딜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쓴다. 그런 경우에 물음표는 마치 물수제비처럼 마음 위를 퐁퐁퐁 건너가버린다.


나에게 중요한 건 그 물음표 다음이다. 내가 말했었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기억해주고, 그걸 짚어서 말해주거나 다른 물음표로 이어간다면 심장이 덜컥, 내가 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너 수박바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너 고양이 알러지라면서, 고양이 만져봐도 괜찮아?”

내가 치킨 좋아한다고 말했던 거 기억 했구나!

단순히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너에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네가 음식을 주문하던 말투와 너의 살짝 기울어진 어깨 선이 떠올라서 버스 손잡이를 잡고 혼자 숨죽여 웃는 날이 며칠 계속되고 나서야, 그 순간은 온다. 네가 좋아서 심장이 덜컥 하는 순간이!


by.소현

 

내가 누군가의 걱정을 시작하고


썸, 그 짧고도 긴 외래어에는 알 수 없는 간질거림과 열오른 볼, 그리고 커피를 너무 마신듯한 긴장이 터질듯 압축되어 있다.


들어본지조차 오래된 단어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만나다 보면 물들어가는 리트머스 용지처럼 ‘썸타고 있나보다’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


이게 날 찔러보는 건지 아니면 그냥 하는 소리인지. 나는 너를 친구로 좋아하는 건지 이성으로 느끼는 건지.


피아를 식별할 수 없는 표정과 말투, 빗발치는 설레발과 헷갈림 속에서 내게 이정표가 되어준 건 ‘걱정’이었다.


굶었다는 친구에게 ‘웬만하면 내일도 굶어라-‘ 대답하는 내가 저녁을 못 먹었단 너의 말에 인상이 찌푸려지면, 그건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썸녀/썸남을 향한 나의 마음… ⓒMBC <아빠 어디가>

손끝에 묻은 먼지처럼 가볍게 장난치던 네가 내 손에 데인 상처를 보고 진지하게 타박할 때,


네가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가슴 한구석에 납이라도 박힌듯 무거워질 때,“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이 영화 대사가 아니라 진심 섞인 걱정처럼 들릴 때, 아마 그때가 내 썸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by.태홍

 

굳이 사진을 보낸다는 건


연애에 있어 누구에게나 상상과 착각은 자유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 저지른 행동에는 ‘이불킥’이라는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한때 남고 3년에 여자 사람만 보면 환장하게 됐던 ‘금사빠’이자 강렬한, 특히 나쁜 기억이면 10년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나로서는 그 벌칙 같은 상황을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문제는 인연인지 아닌지 아리까리한 새 인물들은 종종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여자가 날 좋아할 리가 없어!’, ‘난 그저 좋은 사람일 뿐인거라고.’, ‘남자 앞에서만 스티브 잡스인 주제에 어떻게 할 건데?’ 따위의 말과 함께 번뇌와 체념의 시간도 날로 늘어갔다.


하지만 죽일 놈의 욕망을 이기지 못했던 나는 호구마냥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줄곧 걷어찬 바람에 이불 아랫부분이 해질 때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수사에 임하는 형사마냥 증거를 수집하려 했다.


정황말고, 심증 말고, 확실한 물증 말이다. 이를테면, 사진 같은 거다. 누군가 나에게 셀카를 비롯한 일상 사진을 수시로 보내는 일만큼의 증거도 없다.

이를테면 이런 것처럼…

1. 사진 찍을 생각을 하고 2. 찍고 3. 보내고 4. 지금 뭐하고 있다고 코멘트 달고. 이 귀찮은 과정을 반복한다니, 적어도 쉽게 내뱉어지는 말들이 안겨다 주는 헛갈림보다는 증거로서 효력 있어 보이지 않나?


이게 적중률도 좋은 게, 실제로 애인이 되고 나서 물어보면 거의 내 생각 그대로였다. 역시 증거주의 만세다!


by.정원

 

남들 말고 우리 단 둘이서만


대학 시절 내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대외활동이니 동아리니 자원봉사니 하고 싸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둔감하고 사람 꼬실 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가끔씩 인연의 옷자락이 스치는 순간들이 없지야 않았다.


그 순간들이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하루 종일 카톡을 하네, 밤중에 전화를 하네 하는 것들은 아니었지만, 진정으로 ‘나만 착각한 게 아니었다니까’ 싶은 사건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자꾸 둘이서만, 밖에서, 따로, 몰래 보게 되었다는 것. ‘선배 그 게임 있어요?’에 대한 답은 ‘그래 다음 모임 때 빌려줄게’ 대신 ‘나 아는 츄러스 맛난 카페 있는데, 거기서 해볼래?’가 되고,


‘전에 빌린 책 갖다줘야 하는데’에 대한 답은 ‘모임 날은 바쁘니까 그 전에 보자. 얼마 전에 발굴한 카페 있는데 가볼래?’였다.


그리고 이런 만남들은 다른 사람들이 안 올 만한 곳에서, 전체 모임이 겹치지 않는 날에 이루어져야 했다.


지금 둘의 관계는 뭐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 모호한 상태이니까.


지금 한창 연애라는 이름의 술을 조심조심 빚고 있는데, 툭 하고 잘못 건드렸다가 식초가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조심에 조심을 기해야 했다.


‘앗 둘이 뭐야~~’ 하는 사람들의 미묘하게 헤벌쭉한 표정이나 말들은 그동안의 노력을 뻥 하고 터뜨려버리기 충분했다.

ⓒ 마사토끼, joanna <킬더킹>

그리고 이런 불편한 상황들을 살짝살짝 피해가면서, 함부로 관계를 단정짓지 않으며 서로를 조심조심 알아가고 둘이서만 부끄러운 듯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순간들은 더할 나위 없이 근질근질하고 달다구리한 썸의 증거였다.


그러니 그 중 몇 개는 연애 본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나는그 순간들을 자신 있게 썸이라 명명할 수 있었다.


이것이 썸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썸이란 말인가! 그렇지? 암암, 그렇고 말고.


by.자인

 

다른 무엇보다 내가 짓는 표정에


사람이 눈의 웃음은 속일 수 없어도, 입의 웃음은 속이기 쉽다 했던가.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쪽이 거짓말이다.


이 얘기는 틀림없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누군가의 거짓말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눈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몇 마디 주고받는 카톡만으로 이렇게 내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엄청 소심하고 또 겁도 많았던 나는, 상처받기 싫어 일방적인 짝사랑 앞에선 철저하게 마음을 사렸다.


혼자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편하게 웃지 못한 채, 잠깐의 톡에도 어쩐지 불편함만 있었다.


썸의 정의가 어떻든지간에 서로의 마음을 주고 또 받아야만 가능한 관계라는 점에서, 마주보고 감정을 주고받는 썸일 때에야 내 입꼬리는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이렇게…는 아니지만 이렇게 웃었다. ⓒ <스파이 명월>

종종 애매한 썸에 대해 고민할 때, 백날의 카톡은 아무것도 모르며 만났을 때에 판단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 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표정 숨기는 것이 익숙한 나 같은 소심쟁이들에겐, 카톡 하나를 붙잡고서 혼자 히죽이는 내 입의 반응이 때로는 썸에 대한 가장 정직한 근거가 되어주기도 한다.


by.현민

 

돌이켜 생각하면 썸이란 참 미묘하다. 어느 순간 서로가 특별해진 관계인 것은 분명한데, 어느새 일상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머릿속을 빙빙 맴돌고 있는데, 그래서 무슨 사이인 거냐 물으면 참 대답하기 어렵고 난감하다.


원래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 사람 사이의 일이라지만, 이 관계는 더욱 그렇다. 자칭 연애 전문가라는 친구의 말 다르고, 방송에 나온 유명 연예인의 말이 다르다.


그래서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냐고? 글쎄, 사실은 누구에게 물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결국 썸도 연애도 모두 너와 나 둘만의 일인 걸.

요즘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이게 무슨 사이인 건지 사실 헷갈려 무뚝뚝하게 굴지 마

소유, 정기고 <썸(some)>(2014)

원문: Twenties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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