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발정제를 먹어봤습니다
모 대통령 후보의 돼지 발정제 이야기가 넘실거리네요. ‘돼지 발정제가 뭐냐’ ‘듣기도 처음 듣는다’ 하는 분들 많으신데, 저는 무려 그걸 먹어봤습니다. 예전부터 하도 얘기를 많이 하고 다녀서 제 지인들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마침 노트북 배터리도 10% 남았으니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촥촥촥 썰을 풀어봅니다.
때는 진배가 17살,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오르고 엉덩이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시기였습니다. 교복 치마를 줄여 입었고 앞머리에는 크고 신선한 깻잎 한 장을 붙이고 다녔죠. 캬~! 멋을 아는 고딩! 진배의 고향은 축산업이 발달한 곳입니다. 당연히 축사가 많았고 돼지 발정제도 많은 곳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런 곳에서 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몇 가지 사건을 제외하면요. 그 몇 가지 사건에 돼지 발정제 에피소드가 있네요.
일요일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읍내에서 하여간 무언갈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무얼 입었는지는 기억이 납니다. 청카바! 당시에 유행했던 스키니 청재킷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단추를 채우면 상체가 터질 거 같은데, 숨 한번 크게 쉬면 옷 다 터질 거 같은데, 그 흉함을 모르고 그저 유행 아이템을 입었다는 이유로 자긍심이 +100 된 날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도착하니 중학교 때 알던 남자사람친구가 우리집 대문에 서 있습니다.
청카바를 입고 도착한 곳은 동네 오빠네 집이었습니다. 오빠네 부모님은 어딜 가셨는지 보이지 않고, 가끔 보며 얼굴을 익힌 오빠들이 거기서 담배를 피우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널브러진 새우깡과 포스틱이 눈에 들어옵니다. 헐, 이 오빠들 미성년자인데 술 먹고 담배 피우네? 이걸 엄마한테 일러 말어 생각하며 인사했습니다.
처음 보는 오빠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중 한 명이 제게 쌕쌕이 음료를 하나 건넵니다. 새콤달콤 과즙의 맛 쌕쌕이. 귤의 알갱이가 톡톡 터지는 쌕쌕이. 고등학생들은 유치해서 안 먹는 쌕쌕이. 저는 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쌕쌕이나 오렌지 주스나 뭐가 다른지… 고급진 입맛을 가진 진배는 귤 음료는 싫으니 오렌지 음료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음료를 준 오빠가 안 된다고 합니다.
뭐 이런 대화가 족히 20분은 진행이 되었습니다. 쌕쌕이가 뭐라고 이렇게 집요하나. 동네 오빠가 마시라는데 마셔볼까 하고 쌕쌕이를 노려보았더니, 쌕쌕이가 이상해. 뭔가 노르스름한 액체가 캔 주위에 떨어져 있는데 분명히 쌕쌕이가 아니야. 쌕쌕이 위에 살짝 막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고, 투명한 그것은 기름덩어리 같기도 하고 비눗물 같기도 하고, 하여간 뭔가 내가 알던 쌕쌕이가 아니야. 진배가 질문합니다.
이런 대화가 또 20분은 진행되었습니다. 분위기 진짜 이상했어요. 거기 있다간 오빠들에게 맞을 거 같은 분위기. 얼른 벗어나고만 싶었습니다.
쭈욱 들이켰습니다. 아 그때의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거 같아서 속이 안 좋네요. 쌕쌕이가 쌕쌕이가 아닙니다. 쓰고 뭔가 막 느끼하고 토할 거 같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데 어느새 여러 명의 오빠들이 절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여러 개의 시선이 일제히 제게 꽂혀있어요. 진배야 어때? 기분이 어때? 그런 말을 막 하면서… 그때, 저를 데리고 온 친구가 갑자기 소리를 칩니다.
뭔지 모르겠는데 이때다 싶었어요. 그 친구를 따라 밖으로 나와서 집에 왔습니다. 며칠 후 얼굴에 멍이 든 그 친구를 봤습니다. 후에 친구가 그러더군요. 니가 먹은 건 돼지 발정제였다고. 저는 그날 이후로 청카바를 입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그 일을 떠올리면 토할 거 같았어요.
대학교 때 그 일을 떠올리면 분노했죠.
직장인이 되어 그 일을 떠올리면 살인 충동이 일었습니다.
지금 그 일을 떠올리면… 사실 이젠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당한 일이 뭔지 확고하게 알아갈수록 더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오빠들은 잘 지내더라고요.
나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내게 꽂히던 오빠들의 눈빛을. 그건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돼지보다 못한, 발정 난 짐승의 눈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문제가 되는 대통령 후보도 당시 그런 눈빛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새끼 아니었겠죠. 근데 그걸 잘못한 줄도 모르고 자서전에 썼으면… 전 그 양반이 아직까지도 사람새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뭐 괜찮습니다. 하루 이틀입니까. 좀 전에도 기사로 읽었습니다. 강제로 키스한 남자의 혀를 깨문 여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고. 괜찮아요. 뭐 하루 이틀입니까. 여교사 성폭행 사건은 감형되었네요. 괜찮아요. 뭐 하루 이틀 아니잖아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왜 그날 동네 오빠의 집에 갔던 걸까요? 왜 주는 대로 쌕쌕이를 마셨던 걸까요? 고등학교 1학년 정도 됐으면 충분히 사고하고 판단했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그 짐승의 눈빛은 죄가 없습니다. 본능일 뿐이잖아요. 그러니까 고매하고 훌륭한 양반들께서 그걸 추억 삼아 책으로까지 내는 거 아니겠습니까? 꽉 조인 청카바 입고, 앞머리에 깻잎 붙이고 다녀서 정말 죄송합니다. 시발.
덧
돼지 발정제 찾아보니 나오네요. 내가 먹은 게 이건가… 사알짝 노르스름했는데…
원문: 수진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