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 고양이 귀염이의 빅 픽처

조회수 2018. 2. 17.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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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그림 정말 잘 그린 귀염이!

삼색 고양이 귀염이의 빅 픽처

 

어제까지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공사가 시작되고 조금씩 집이 완성되어갔다. 고향마을로 귀촌한 가족의 꿈이 담긴 예쁜 집이었다. 땅이 다져지고 기둥이 세워지고 마침내 지붕이 얹히는 동안, 가까이서 이 모든 과정을 눈여겨 본 고양이가 있었다.

 

야무진 표정의 작은 삼색 고양이 한 마리는 공사가 시작될 무렵 홀연히 나타나 집이 완공되는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이때까지 식구들은 알지 못했다. 삼색 고양이의 원대한 빅 픽처를...

 

이윽고 집이 완성되는 날, 고양이는 그 집으로 들어왔다.

귀염이가 찜한 하얀 집

 

병아리조차 키워본 적 없던 세 식구에게 찾아온 묘연은 다소 황당했다. 

 

귀촌을 결정한 가족이 아버지의 고향인 거제로 내려온 건 3년 전 일이었다. 황무지였던 곳에 집터를 잡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도 왕창 심으며 공사는 시작됐다. 

 

집이 거의 완성되고 식구들이 들어와 살면서 이곳저곳을 손볼 무렵 귀염이가 나타났다. 사실 공사 도중 몇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마당에 서 계시던 아버지에게 귀염이가 다가왔어요. 날짜도 잊히질 않네요. 2014년 11월 28일입니다. 반겨주었더니 그 뒤로는 부쩍 자주 보이는 거예요.


임시 보일러실이나 데크 소파 위에서 주로 발견되었죠. 귀염이는 엄마 뱃속에서 영양분이 부족했는지 꼬리가 아주 짧은 편인데, 그래서 표시가 확 났죠.”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식구 중 한 명이라도 고양이에 대한 반감이 있다면 입양은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마련이니.


유진씨네 어머니도 고양이를 무서워 해 처음에는 반대를 했다. 그런데 추운 데서 웅크리고 잠든 모습이 자꾸만 눈에 띄었다. 천을 넣어주고, 그러다 스티로폼 박스로 집을 만들어주면서 서서히 정을 붙여나갔다. 

 

밥 먹고 있을 때 유리문에 붙어서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를 외면하기 힘들어졌다. 그렇게 고양이에 대해 전혀 몰랐던 가족에게 고양이가 찾아왔다. 이 모든 과정이 귀염이의 빅 픽처는 아니었을까.

산책하고 등산 가고, 일 년 열두 달 꽃과 함께 사진도 찍고

 

함께 살게 된 지 보름쯤 되었을 때 세 식구가 동네 산으로 등산을 나섰다. 뒤돌아보니 귀염이가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그날의 등산은 엉겁결에 네 식구의 산행이 되어버렸다. 녀석이 뜀박질도 잘 하는 데다 사냥도 수준급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귀염이는 너무나 완벽했다. 아무리 신발을 많이 벗어놓아도 밟지 않고 조심스레 지나갔고, 단 한 번도 그 많은 화분들을 건드린 적이 없었다. 실수로라도 물거나 할퀴지 않았다. 유진 씨에게 이 착한 고양이가 대체 어디서 온 것 같냐고 물었다. 

 

“논 하나 건너면 숨을 곳이 많은 폐가가 있어요. 거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귀염이를 처음 만났을 때 갓 성묘가 된 것 같았는데, 그 때부터 쭉 혼자였어요.

저희 가족과 3년간 함께 살면서도 다른 길냥이들과 어울리는 법이 없답니다.


영역을 지키려는 본능이 강해서 쥐든 고양이든 근처에 오면 가만 두질 않아요. 똑똑하고 야무지면서도 용감하다고 할까요. 다만 살아있는 쥐나 두더지는 이제 그만 가져왔으면 해요.”

 

통통한 산쥐와 대치 중인 귀염이의 일상은 인스타에도 일기처럼 올려졌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고양이 같다며 귀여워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가는 중이다. 인스타를 통해 작가들이 연락해 오기도 했다. 귀염이는 그렇게 <100마리 고양이>라는 책에도 실리게 되었다. 몇 번째 고양이일까.

귀염이의 모습은 계절별로 피고 지는 꽃들과 함께 찍힌 사진 속에서 빛을 더했다. 1월엔 동백, 3월엔 제라늄, 4월엔 죽순, 5월엔 홍가시나무, 6월엔 분홍낮달맞이꽃, 11월엔 메리골드, 12월엔 대나무... 그 모든 계절 속에 꽃과 함께 귀염이가 찍혀 있다. 

 

한 살이 되기까지 초년운은 외로웠으나, 하얀 집에서 살게 된 후론 멋진 인생이 펼쳐진 귀염이. 스스로 인생을 선택하고 개척한 대단한 고양이다. ​ 

고양이에게 맞춰진 가족 시계

 

처음에 고양이를 무서워했던 엄마는 이제 새벽 마실 나가는 귀염이를 위한 문지기가 되었다. 쥐를 물고 들어올까 봐 고양이 문 설치도 못하고 있는 와중에, 밤산책 나갈 때는 꼭 엄마를 수염으로 간지럽혀 깨운다고.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언니는 국내 서적으로도 모자라 해외 서적까지 구입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젠 해외 직구도 한다. 

 

“아버지는 귀염이가 우리 집 대장이라고 하세요. 식구들 모두 고양이가 싫어하는 건 안 하고, 고양이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거든요.


귀염이를 제일 우선순위에 두고 살고 있죠. 친척집을 방문해도 외박은 있을 수 없고요. 외출은 되도록 귀염이 낮잠 시간에 맞춰서 cctv 켜놓고 살짝 나갔다 온답니다.”

그런데 대체 귀염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은 것일까. 뒤늦은 물음에 유진 씨가 살짝 귀띔해주었다. “이름은 아버지가 정하셨어요. 귀여우니까 귀염이. 딱이죠?”


가족 모두가 찬성한 이름이 귀염이도 맘에 든 것 같다. 부르면 달려오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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