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파고드는 올가미 씌인 어미개 구한 동네주민들
지난 17일 자정이 다 된 늦은 시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주민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진정제를 준비하고, 다른 사람은 절단기, 망치 등 손에 도구를 든 채였고, 또 다른 이는 휴대전화로 모든 상황을 녹화하는 중이었다.
이윽고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시민활동가가 진정제를 먹은 백구 곁으로 다가가 몸을 조이고 있던 전깃줄 올가미를 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구조된 백구는 "아이고, 다행이다. 뺐다, 뺐어.", "뚜치야, 치료 잘 받고 온나" 등 주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강동구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살갗은 물론 근육까지 파고든 전깃줄 올가미에 큰 부상을 입은 '동네 개'를 동네 사람들이 구조했다. 일명 '독박골'로 불리는 녹번동 주민들 이야기다.
독박골에는 총 4마리의 백구가 주민들의 보살핌 속에서 지내고 있다.
주민 허은영 씨는 "주인이 없는 개를 '들개'라고 많이 부르는데, 이 아이들은 저희와 동네에 함께 사는 '동네 개'예요. 저희가 주는 음식을 먹고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멧돼지로부터 동네를 지키는 녀석들이죠."라고 설명했다.
'뚜치'가 몸에 전깃줄 올가미가 걸린 채로 돌아다니기 시작한 건 1~2주 전의 일이다.
주민들은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예민한 뚜치를 생각해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한편, 구조 방법을 의논했다.
지난 15일, 뚜치의 상처 부위에서 피가 나는 걸 본 주민들은 인근 소방서에 구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난색을 표하며 동물단체에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되돌아갔다.
1차로 시민활동가와 함께 포획에 나섰지만 뚜치가 놀라 달아나는 바람에 실패했다.
뚜치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올가미가 계속 살을 파고 들었다.
서둘러 다시 모인 주민들. 지난 17일 밤 두 번째 포획에 나섰다.
병원으로 옮겨진 뚜치. 근육이 절단되는 등 상처가 깊어 외과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주민들은 뚜치가 병원에 간 이후 남은 백구 세 마리가 밥도 잘 먹지 않은 채 불안해하고 있어 뚜치가 얼른 건강해져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