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먹었니?" 영국인 말에 이 여성은 직업까지 바꿨다

조회수 2020. 9. 21. 18:07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영국에서 한식 푸드블로거 활동하는 윤현정씨
영국에서 한식 푸드블로거 활동하는 윤현정씨
블로그와 유튜브 통해 외국인에게 한식 알려
"억지는 안돼요, 자연스레 맛보게 해야죠"

“아, 한식당? 개고기를 먹고 왔나 보구나?”


지난 2002년 즈음, 윤현정(41)씨가 영국 맨체스터에서 들었던 말이다. 영국인 남편과 식사를 한 뒤 남편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 아버지가 불쑥 던진 질문이라 한다. 이 한마디로 그는 영국 내 한국 음식의 위상을 뼈저리게 느꼈다.


15년이 지난 지금, 윤씨는 영국에서 ‘한식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푸드 블로그를 운영 중이며, 맨체스터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쿠킹 스쿨인 'Food Sorcery'에서 ‘김치 클래스’ 강사를 맡고 있다. 버는 돈보다 출강 때마다 나가는 기름값, 주차비, 점심 식사 비용 등이 더 크지만, 오히려 강의 일정을 더 늘릴 계획이라 한다.

출처: gildedgingerbread.com
윤현정씨.

개고기만 있는 게 아니다


애초부터 요리와 인연 있던 삶은 아니었다.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석사 학위를 받고, 대학, 학원, 기업체 등에서 토익과 영어회화 강의를 했다. 통번역 일을 해 책을 내거나 방송에 나오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대구대 교수로 근무하던 영국인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영국에선 두 번에 걸쳐 나눠 살았다. 처음 3년간 영국서 지내다가 한국에 돌아왔고, 7년 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쭉 살고 있다.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시어머니께서 홀로 지내며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저와 남편 둘 다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건너갈 결심을 했어요.”


영국에 정착하자마자 한식을 적극적으로 알리려 했던 건 아니었다. “개고기 사건으로 필요성 자체는 느꼈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영국에선 한국 음식을 거의 몰랐으니까요. 잘 모르거나 거부감 있는 사람에게 음식을 억지로 들이미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쉽다 생각했어요.”


이 때문에 남편 가족이나 친지들이 파티를 할 때에만 한국 음식을 대접했다 한다. “한국엔 개고기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는 싶은데,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영국 사람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갈비찜, 잡채, 볶음밥 등을 주로 만들었어요. 물론 억지로 권하진 않고, 스스로 호기심을 느끼고 맛보길 기다렸죠.” 시간은 좀 걸렸지만, 한식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갔다 한다. “남편 사촌 한 명은 6년 전 딸 돌잔치 때 먹었던 갈비찜 이야기를 지금도 해요. 그렇게 잊히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나요.”


본격적인 홍보


주변인 범위를 넘어 널리 한식을 홍보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지난해 4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인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제주도를 방문했어요. 그가 김치를 만드는 모습이나, 불고기를 먹는 장면들이 TV에 나오더군요. 이를 계기로 영국 본토에도 한국 음식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어요. 이때가 기회라 생각했죠.”


2017년 들어 푸드 블로그(gildedgingerbread.com) 운영을 시작했다. 오이김치, 돼지갈비찜, 두루치기 등 전통 한국 음식뿐 아니라, 핼러윈 김밥, 김치 퀘사딜라 등 퓨전 스타일 요리도 레시피를 적어 올렸다. “남편이 한국에서 지낼 때, 주변에서 번데기나 산낙지를 심하게 권했었어요. 싫어하는 티를 내는데도 말이죠. 이런 모습을 곁에서 봐왔기 때문에, 전 외국인에게 음식을 강요해서 먹이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우리도 외국 가서 어떤 음식이건 다 쉽게 먹는 게 아니잖아요. 전 영국인이 한식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그 방법 중 하나가 퓨전이죠.”


오프라인 김치 강의에도 나섰다. 수업 때엔 외국인이 김치를 거부감 없이 이해하도록 설명하려 애쓴다 한다. “무조건 김치는 슈퍼푸드니 먹어라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평소에 먹던 음식과 의외로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강조해요. 독일에서 즐겨먹는 사우어크라우트(양배추절임)과 비슷하지만, 좀 더 맵고 맛이 진하다는 식으로 알리는 거죠. 또한 영국에선 주로 김치를 Fermented Chinese cabbage로 부르는데, Fermented(발효)가 의외로 영어권에선 어감이 좀 그렇거든요.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삭힌’ 정도 느낌이려나요. 그래서 저는 대신 외국인들도 반찬에 많이 쓰는 표현인 Pickle(절인)을 써서, 심리적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낮추려 하고 있어요.”

출처: 윤현정씨 제공
영국인에게 김치를 설명 중인 윤현정씨(가장 왼쪽).

최근엔 유튜브 채널(youtube.com/c/GildedGingerbread)을 개설해 한식 만들고 즐기는 법을 전파하고 있다. 돌솥비빔밥을 조리하는 방법이나, 삼겹살에 쌈장을 얹어 먹는 방식 등이다. “요리 자체가 복잡한 건 아닌데, 여러 나물과 양념을 한 번에 밥과 섞어 먹거나, 상추 위에 고기와 마늘과 김치 등을 하나하나 직접 얹어 먹는 건 외국인 입장에서 낯설기도 하고 직관적인 이해가 어려울 수 있거든요. 영상으로 차근차근 보여주면, 훨씬 따라 해보기 쉬워지죠.”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블로그나 유튜브를 운영해 버는 돈은 없다 한다. 그럼에도 매주 2회씩은 꼬박꼬박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사실 한식을 알린다 해서 제게 딱히 득 되는 것도 없어요. 식당 주인도 아니고, 전업주부가 한국 음식을 홍보해 봐야 이익 날 게 뭐 있겠어요. 그냥 엄마들이 그렇잖아요. 만든 음식 아이들이 맛있게 먹으면 괜히 기분 좋은 거. 저도 외국인이 저를 통해 한식을 알고 즐기게 되는 모습 그 자체가 좋더라고요.”


앞으로는 온라인 홍보를 늘릴 뿐 아니라, 오프라인 클래스 규모도 확장할 계획이라 한다. “외국인이 오프라인 강좌를 통해 한식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면, 집에서 요리해 먹을 수 있게 되죠. 그러면 우리 음식이 그들 가정식 문화에 스며들 수 있는 거고요. 이런 식으로 장차 우리 음식이 서양 식문화와 자연스레 어우러지면 좋겠어요. 의외로 한식을 접하고선 꾸준히 즐겨먹는 영국인 분들이 많은 걸 보니, 그저 꿈같은 일만은 아닌 듯해요.”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