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큐레이션] 이타심의 뿌리는 인정욕망

조회수 2017. 5. 29. 14: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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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자 김학진 교수의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북클럽 오리진이 궁금하다면

[오늘의 큐레이션]은 한번쯤 읽어볼 만한 국내외 책과 글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사회신경학자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의 신간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입니다.


이타성과 공정성을 추구하는 우리 마음이 집단 속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뿌리 깊은 욕망과 닿아 있다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개인과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한 책입니다.


인간의 인정욕은 서양 철학사에서는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최신 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보다 정교하게 실증적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인간본성에 대한 자각이 도덕적 냉소가 아니라 보다 성숙한 개인과 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본문 중 일부를 발췌 소개합니다. 관련 도서도 곁들였습니다.


타인을 돕는 이타적 행동은 복잡한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보다 우세하고 직관적인 가치로 강하게 우리 뇌 속에 각인되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은 음식이나 섹스만큼 강력한 쾌감을 줄 수 있다. 이 쾌감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강력해지며, 다른 모든 보상들과 마찬가지로 유기체의 생존 목표와 직결될 수 있다.


인정 중독은 다른 종류의 보상들로 인한 중독보다 더 강력하고 더 헤어나오기 어렵다. 이를 대체할 만한, 더 강력한 가치를 가진 다른 보상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 그 주된 이유다..


타인과 비교하여 자신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적응 능력, 즉 생존 적합도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된다. 이러한 인식은 주로 타인으로부터 존중을 받으면서 지각된다.


인정 욕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존중으로는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게 되면, 점차 높은 수준의 존중을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일상적인 수준의 사과나 감사의 표시에는 오히려 실망감을 느끼거나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급기야 이러한 실망감을 보상받으려는 동기는 분노로 표출되기에 이른다. (이른바 '갑질' 횡포.)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것만큼 친구도 자신을 평가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경멸받거나 과소평가받는 낌새를 눈치 채면, 자신을 경멸한 사람에게는 위해를 가하고, 그밖의 사람에게는 그러한 예를 보임으로써 그들로부터 보다 높은 평가를 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홉스, '리바이어던'

타인과의 비교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은 행복과 멀어지기 쉬우며, 이러한 사회 비교를 강조하고 부추기는 문화는 구성원들의 행복감을 저해하기 쉽다..


타인의 비난에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그것을 회피하려는 태도 역시 인정 욕구의 또 다른 발현일 수 있다.. 항상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고 충돌 없이 잘 어울여야 하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지나치면 인정 중독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인정 욕구는 결과적으로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


개개인이 소외감을 강하게 느끼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강하게 느끼는 집단일수록 집단 따돌림이나 험담의 빈도는 잦아지고, 그 강도 역시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동기에 대해서도 집요한 자기인식을 거쳐 그 감정의 근원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이러한 자기인식 과정을 통해 자신이 느낀 이타적 동기가 결국 인정 욕구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지각하게 될 때, 우리는 이타적인 행동을 포기하게 될까?


이에 대한 답을 생각해볼 때 중요한 점이 있다. 바로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왜 하필 타인을 돕는 이타적 행동을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감정의 근원을 따라갈 때, 우리는 타인의 문제가 나의 안녕과 무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은 또한 더욱 큰 힘을 가진 이타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타적 동기에 대한 자기인식 과정은 오히려 더욱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이타적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효율적 이타주의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휴율적 이타주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성취감을 얻는 한 방법이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선행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직접적으로는 남을 돕지만, 간접적으로는 스스로를 돕는다. /피터 싱어, '효율적 이타주의자'

효율적 이타주의는 '내가 가진 능력으로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를 자문하고 증거와 신중한 추론으로 그 해답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할 때도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과학은 정직하고 공정한 방법을 이용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며 그 결과가 무엇이든 겸허히 수용한다. /윌리엄 맥어스킬, '냉정한 이타주의자'

언제부턴가 현대 사회에서 '불확실성'은 곧 문제와 동일한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너무 심해져 불확실한 상황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상태도 분명히 문제가 된다.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을 어떻게든 확실한 상황으로 간주하려는 욕구로 이어질 수 있으며,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이 확고한 것이라고 믿게 되는 순간 타인의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견 차이는 거의 모든 사회적 갈등의 핵심 원인이 되곤 한다.

합리성과 공정성의 본질은 '확실한' 완성형이 아니라 '불확실한' 진행형일지 모른다.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완성된 결과나 상태로 보면 오히려 그 본질을 왜곡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또한 합리적 사고나 공정한 판단의 기저에 자리 잡은 자기중심적 속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이라 믿기 쉽다. 이러한 비유연성은 오히려 소통 불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 사회 내에서 생성되는 합리성과 공정성은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독특한 욕구들이 한데 모이는 상황에서 서로 부딪히며 조각되는 가치일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던 공정함이나 합리성의 기준이 항상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수정이 필요할 경우 이를 빨리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진정 합리적이고 공정한 이의 태도가 아닐까?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태도를 통해 공정성은 점차 우리가 원하는 완성형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잘못된 혹은 부적절한 선택은 좋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조바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지나치게 불규칙하거나 불균형한 식단을 선택하는 경우,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이른바 '스펙' 쌓기에만 과도하게 열중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우리들이 '좋은' 선택이라 규정하고 추구하는 가치는 대부분 신체 항상성 유지라는 궁극적 목표보다는, 이로부터 파생되어 나타난 도구적 목표들일 가능성이 높다.


돈, 명예, 사회적 지위 등 좀 더 복잡하고 추상적인 형태의 보상들도 예외가 아니다. 한번 균형 상태를 회복하면 바로 사라지는 궁극적 욕구와는 다르게 도구적 욕구는 균형 상태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균형 상태'라는 절대적 기준보다 상대적 차이에 민감하다. 따라서 이러한 도구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행동은 중단시키기 어렵고 항상 더 강한 보상을 향해 끊임없이 지속되기 쉽다...


좋은 선택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마다 한발 물러서서 그 이유를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인생을 뒤바꿀 수도 있는 중대한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이런 조언을 듣는다. "네 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이 말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새결 볼 만하다.

미니북 '연민이라는 가슴의 지혜'

어쩌면 사람은 자신의 가진 도덕적 가치를 완성된 상태를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성장을 멈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자가 말하는 종심(從心, 마음을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 70세)에 해당하는 사람은 도덕적 가치의 완성을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닐까?


뇌과학이 보여주는 도덕성과 이타성의 모습은 이기적인 나의 어두운 모습을 억제하는 절대 선이 아니다. 오히려 내 주위를 둘러싼 여러 대상들과 환경에 발맞추어가면서 내가 갖고 태어난 내적인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욕구일 수 있다.


도덕성과 이타성은 어쩌면 우리의 내적인 욕구가 성장하면서 추구해갈 수밖에 없는 궁극적 지향점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도달했을 때의 가장 큰 수혜자 또한 자신이 될 것이다.

미니북 '우리와 그들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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